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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멜번저널-한국인의 영원한 메뉴 김치를 이 땅에 알린다-멜번 최초의 김치 전문 제조업체 코리아 김치를 찾아
작성자 대표 관리자 작성일 2009-12-07 13:46:41 조회수 1027
   
 

    오래 묵은 김치의 시큼한 냄새와 갓 버무린 배추 김치의 맵고도 아릿한 향에 군침 돌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삼시 세 끼 물리도록 식탁에 올라오는 김치일 뿐인데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타지에 며칠간 단기 여행을 떠나면서까지 유난스럽게 김치부터 챙기기 마련이다. 한국,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서 이제는 세계각국에 신비의 건강식으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고 있는 김치. 최근에는 프랑스의 유명 요리 아카데미 ‘르 코르동 블루’는 김치요리를 서구식으로 개발하고 홍보하기 위해 농수산부와 협정을 맺기까지 했다.


이 곳 멜번에도 까다로운 한인들의 입맛을 책임지며, 나아가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 작게 나마나 이바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18 Terracotta Dr. Blackburn에 위치한 ‘코리아 김치’ 매장 겸 공장. 알아주는 길치로 역시나 그 날도 길을 헤메느라 약속 시간보다도 두어 시간 늦은 기자를 김성준 사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호주 전역에서 1~2위의 공장규모를 갖추고 각 아시안 식품점들 냉장고 속에 떳떳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치들 중, 80% 이상이 이 곳 ‘코리아 김치’에서 생산되는 것이라며 자부심이 느껴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하지만 겸손하게 말하는 김성준 사장. 6개 월간의 테스트 기간을 거친 후 2002년 11월에 개업하여 지금껏 ‘멜번 첫 김치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코리아 김치’의 탄생 과정, 김성준 사장의10년 이민 생활기, 그리고 그간 5년 간에 걸친 파란만장 김치사업 성공기를 들어본다.

 


처음 이민을 오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김성준 사장의 초창기 이민시절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우선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니 제 아무리 똑똑한다 한 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수 밖에! 특별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전까지는 일단 몸으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에 노동판에 스스로를 던졌고, 난생 처음 샌딩이라는 육체적 노동일을 하며 육신은 힘들었지만 ‘노동의 신선함’을 경험할 수 있었단다.


사실 김성준 사장은 한국에서 번듯한 광고 대행사를 운영했었다. 15년을 몸 바쳐 온 회사가 1997년 말IMF의 여파로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게 되면서 급기야 무너져 내렸고 “그 오랜 세월 나름대로 회사를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나 자신이 작게나마나 이바지해온 바가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내가 돌려 받은 것은 뭔가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김성준 사장은 잠시 감상에 젖은 술회를했다. 심난한 마음에 일주일간 정도 머리와 마음을 식히겠노라 가족에게 통보를 해 놓고 친구가 있는 멜번에 가기 위해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람 일은 한 치도 그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고 했던가. 절망과 허탈함 속에 그렇게 무심코 내딛은 발이 멜번과의 인연 시초였다.


그 일시도 생생한 1998년 7월 10일 아침 8시. 마중 나온 친구의 차로 완공된 지 1년이 채 안된 astern Freeway를 달리며 티 없이 맑은 호주의 청아한 공기를 온 몸으로 들이마셨다. 깨끗한 경치, 그리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한국과 대조되는 여유로움은 김성준 사장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결정적으로 다음 날 아침,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가로수에 앉은 빨강 앵무새 한 쌍을 본 것으로 그의 생각은 확고해 졌다. “여기서 살고 싶다!” 안분지족의 참 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휴식 차 일주일 여정으로 왔던 여행이 2주로 연장 되었고 급기야 이후 3~4년 사이에 영주권을 획득 해 온 가족이 다 함께 멜번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 평생을 살아온 고국에 대한 미련이나 애정들이 어찌 남아있지 않았을까만, 김성준 사장은 당분간이라도 그 모든 것들을 잊기로, 묻어두기로 하고 “헌 노트를 버리고 새로운 노트를 쓰는 기분으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루는 함께 샌딩 일을 하던 한국인 동료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갔더니 때마침 그 집에서 주문한 포장 김치가 도착해 있더란다. 한 점 찢어 먹은 후 변변치 못한 그 맛에 김성준 사장은 희미하게 나마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맛 좋은 “아내표 김치”였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크게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배추나 양념, 모두 소량으로 구입을 해서 배달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재료에는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고. “아주 사소한 재료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당연히 타산은 맞지 않았죠.” 식품 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첫번 째 조건은 뭐니뭐니해도 ‘맛’이라는 사실은 두 말 할 것도 없으니 아무리 적자가 나더라도 변변치 못한 재료를 사용할 수는 없었을 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급 재료들만을 한국, 일본등에서 공수 해 왔고 맛좋은 김치는 그렇게 입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호주 배추는 한국의 그것처럼 아삭거리는 맛이 없다고 김치를 담글 때 마다 투덜대는 기자의 엄마 생각이 나서, 배추는 어디서 공수 해 오며 그 특유의 씹히는 맛을 살리는 데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마치 극비리 정보라도 캐내는 양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게 또 보~통 배추가 아닌거죠!”
자급자족 할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하기 위해 처음에는 무작정 박스힐 시장에 나가 배추 상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에 연락을 취했단다. 물론 까칠한 농장 주인은 자신은 소량공급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다며 김성준 사장의 제안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전화시도와 매주 새벽같이 시장에 나와서 몸소 보여준 열성에 결국은 감탄을 한 것 일까. 농장 주인은 매주 한 번 박스힐 시장에 나올 때마다 김성준 사장 개인에게 배추 6상자를 특별(?)공급해 줄 것을 약속했고, 그리하여 비가 오나 눈이오나 김성준 사장은 매주 정해진 날, 새벽2시만 되면 배추를 픽업하러 시장으로 나갔다. 1년 새에 주문은 6상자에서 20상자로 늘어났다.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부터는 김성준 사장 본인이 직접 농장을 찾아 모종 방식부터 씨 종류까지, 우리 전통 김치에 가장 적합한 배추를 거두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도 굴하지 않고 ‘농부’의 역할 까지 함께 했고 그래서 마침내 호주에서도 한국의 그것과 흡사한 시원시원하고 아삭거리는 배추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반가운 전화를 한 통 받았단다. 호주에 여행객으로 와 있는 동안 퀸슬랜드, 퍼스에서도 지내며 김치를 구입 해 먹었었는데, 과연 그 어떤 맛도 코리아 김치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면서 자신이 운반비는 모두 부담할테니 한국에서 어떻게 코리아 김치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그간의 고생이 눈 녹 듯 녹아내리는 듯 했다고 해도 그때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순간이었다.!여러 가지 여건 상 불가능하다고 정중히 거절은 했지만, 자신의 김치에 한층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 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며 수더분하게 웃는다.


앞으로 5년 내지 10년 안에 호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로 키운 후 더 나아가 한국으로 김치를 역수출할 기회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내비치는 김성준 사장. 마지막으로 호주의 한인 사회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이민선배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구해봤다. “이제는 멜번의 한인들이 여러 면에서 호주의 경제 분야에 틀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공이 보장되는 사업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진부한 아이디어에 안주하려는 모습 보다는 무언가 독창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승부를 거는 걸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민이라는 것 그 자체가 절대로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더욱 열심히 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그 말이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거죠”


무엇보다도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을 늘 되새긴다는, 위기를 성공의 원동력으로 진화 시킨 ‘코리아 김치’의 김성준 사장. 그날 저녁 집에 와 선물로 받은 총각 김치를 맛 보며 이런 훌륭한 맛, 그리고 그의 끝 없는 포부와 열정이라면 말로만 듣던 ‘김치 글로벌 시대’도 머지 않아 실현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히 꿈이 아닌,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해 보았다!

출처:멜번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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